[남·별·이]수필가 이연순 "글은 내게 공기 같아..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등록일자 2024-05-18 09:00:01
혼자 두 자녀 키우며 인생 풍파 겪어
50대에 문학 수업..아픔을 글로 승화
수필집 '눈빛' 웅숭깊고 곰삭은 글맛
[남·별·이]수필가 이연순 "글은 내게 공기 같아..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글쓰기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연순 작가

"저에게 만일 고난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젊은이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칠십여 년 인생 노정에서 수많은 역경을 헤쳐온 수필가 이연순 씨는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니 신(神)의 뜻을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전남 장성 백양사 부근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글쓰기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남 보성 부잣집 8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소설을 써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문학에 소질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고 희망에 부푼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 쓰며 두각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짧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남편과 헤어져 혼자서 두 아이를 맡아 키워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거친 바다에 내던져진 그녀는 그때부터 외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독도에서 태극기를 들고 나라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이연순 수필가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두 자녀를 교육시키느라 자신을 돌보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문학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돈 모으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틈틈이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얻게 되자 재테크에 대한 재미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커지면서 무리하게 투자한 결과 큰돈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순간에 거액을 날려버리고 50대에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소설공부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라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광주 라마다호텔에서 가진 수필집 '눈빛' 출판기념회 장면

"글은 제게 공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나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나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광주수필 문학회에서 활동하면서 경북일보, 제일제당 사보 등 여러 곳에 작품을 응모해 당선되자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이어 2004년 '수필문학'으로 정식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연마과정을 거쳐 등단 15년만인 2019년 첫 작품집 '눈빛'(월간문학刊)을 출간했습니다.

◇ 2004년 '수필문학'으로 문단 등단

62편의 주옥같은 수필에는 가족·지인과의 인연, 삶에서 부딪히는 고통, 독서와 영화, 사찰순례 등 일상의 경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정감어린 문체로 수놓아졌습니다.

이 씨의 작품들은 숙성기간이 길었던 만큼 웅숭깊고 곰삭은 글맛이 느껴집니다.

한땀 한땀 엮은 문장 갈피마다 영롱한 빛깔이 우러나고 깊은 사색의 여운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수록된 작품 가운데 표제작 '눈빛'은 임종을 앞둔 어머니와의 애틋한 교감을 감정의 결을 따라 섬세하게 표현한 수작입니다.

"이곳에 발을 들이면 초점 잃은 우련한 눈빛들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찡하다. 더 이상 변곡점 없는 삶의 여정을 마치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에 따라 움직이듯, 함께이지만 따로인 채로 무심하다. 푸르던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로만 남은 채, 야위고 굽은 등은 쓸쓸하기만 하다. …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었다. 묵직한 아픔이 깊숙한 곳에서 점점 더 가까이 느껴진다" <'눈빛' 中>

◇ "밝고 희망적인 수필 쓰고 싶어"

문순태 소설가는 "불교, 인간사랑, 생존에 관한 주제들을 내면화시켜 폭넓게 확장해 가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면서 "작품마다에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이 씨는 "수필이란 작가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며 "나무의 겉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속에 품고 있는 목리문을 보는 일이고, 하나의 체험과 느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과 사상을 사색해보는 일"이라고 피력했습니다.

▲찻집에서 포즈를 취한 이연순 수필가

이 씨는 첫 수필집 '눈빛' 출간 이후 마음의 갈등으로 5년째 글 한 줄 쓰지 못하다가 최근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숲길을 산책하던 중 아카시아 꽃 향기에 취해 문득 글이 쓰고 싶어 겨우 수필 한 편 썼지요, 그게 '예전엔 왜 몰랐을까'예요"

"우리네 인생은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운명의 길을 걷는다. 후미진 길도 걷고 반듯한 길도 간다. 이미 누군가가 걸어간 길이다. 그 길 위에는 각기 다른 희로애락이 준비되어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입니다.

그녀의 수필은 노을빛에 물든 장미꽃처럼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삶이 문장에 투영돼 나타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앞으로는 밝고 희망적인 글을 쓰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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